세상사는 이야기

아!서문시장

강석이 2016. 12. 1. 15:08

[특별기고] 아! 서문시장

2016-12-01 04:55:01

[매일신문 특별기고] 아! 서문시장

 

참담한 일들이 이어진다. 신공항 무산으로 낙담하고, 사드 배치 문제로 홍역을 앓고, 대구경북인의 절대적인 지지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논란으로 허망하고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절대적으로 대통령을 지지했기에 다른 지역 사람들처럼 대놓고 분노를 표시하거나 슬픔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다. 이 와중에 서문시장에 또 큰불이 났다. 그것도 연말 대목을 앞두고 말이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어버린 사람, 연말에 찾아올 손님을 기대하며 물건을 잔뜩 쌓아두었던 사람, 올겨울만 지나면 빚을 다 갚는다는 기대에 들떠 있던 사람들에게 화마는 너무나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나에게 서문시장은 학창 시절 우리 식구들이 끼니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준 버팀목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중학생으로 7남매 중 둘째였고, 막내는 막 돌을 지났다. 원래 재산이 없는 집이라 어머니 혼자 7남매를 먹이고 입힐 수 없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서문시장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1962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매일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의 농촌 마을과 서문시장을 오가며 참외, 배추, 무, 감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교복을 입은 그대로 다사까지 리어카를 끌고 가서, 농가를 돌며 제철 채소를 구입한 다음 밤길을 재촉해 서문시장으로 왔다. 두류네거리(7호 광장)까지는 비포장이라 곳곳에 웅덩이가 있었고, 짐이 무거워 달릴 수도 없었다. 해가 질 무렵 다사에서 출발하면 밤 12시쯤 죽전네거리 인근에 닿았다.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기 직전에 조약국 헛간에 리어카를 밀어 넣고, 그 안에서 잠을 잤다. 새벽 4시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헛간을 떠나 서문시장으로 리어카를 끌었다. 그리고 학교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채소나 과일을 시장 상인들에게 팔았다.

 

물건을 다 팔면 리어카를 당시 춘전정미소(내당동) 옆 전봇대에 묶어 두고 학교에 갔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달성군 다사읍의 농촌 마을로 빈 리어카를 끌고 달려갔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고, 교복을 빨아 입을 때 외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길에서 먹고, 길에서 잤다. 어머니 역시 서문시장 난전에서 장사를 했다.

 

단 한 끼도 보장받을 수 없었던 우리 7남매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시집 장가를 가고, 자식을 낳았다. 7남매 중 5남매는 손주까지 보았다. 7남매의 자식들 역시 반듯한 가정을 꾸리고 제 길을 가고 있다.

 

비단 우리 식구들만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 비참하리만큼 가난하고 어려웠다. 다음 끼니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았다. 공무원 시절 나는 새마을과에 오래 근무했다. 자고 일어나면 지붕을 개량하고, 화장실을 개량하고, 부엌을 개량하고, 농로를 닦고, 제방을 쌓았다. 힘들게 쌓아 올린 제방이 큰물에 휩쓸려 가버리기도 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쌓았다. 그리고 마침내 홍수 피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내 가정, 우리나라는 날마다 새로워졌고, 날마다 성장했다.

 

어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문시장에 큰불이 나자 온 대구시민이 탄식을 하고 있다. 내 마음도 무너지는 듯하다. 또 얼마나 비통한 일이 터질까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오늘처럼 반듯하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 처지가 비록 참담하지만 탄식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해낸 일을 얼마나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던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저력 있는 대구시민이다. 오늘의 반듯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온 주역이었다.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날까지 우리 다시 해보자. 교복을 입고 리어카를 끄는 내게 동네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마음 바르게 먹고 몸 부지런히 놀리면 좋은 날이 온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 다시 해보자.

 

서문시장 대형화재 관련 특별기고로 이번 주 데스크칼럼은 쉽니다. (엄지호 수필가·전 경상북도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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