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가지고 있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온세상을 가진다고 해도 불행할 것이다.(세네카)
고대 로마의 세네카나 로마황제 아우렐리우스 등 소위 스토아철학자를 보면 꼭 현대의 불교의 불법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런 일이 내게 생겨 불행하다 - 가 아니라,비록 이런 일이 내게 생겼지만 나는 현재에 위축되지도 않으며 슬픔없이 계속 지속해 나갈 수 있으니 행복하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 비통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것이 행운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이겠는가? ...
결론을 내리자면, 이제 앞으로 어떤 일 때문에 씁쓸함을 느끼려할 때 기억해야할 규칙이 있다.
"이거 재수 없군"이 아니라 "이를 값지게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행운이야."
(아우렐리우스)
삶에 끈덕지게 집착했던 자들을 검토해 보는 것은 천박한 일이지만, 죽음에 개의치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일찍 죽은 자들보다 그들이 대체 무엇을 더 얻었을까... 분명 그들도 결국에는 어딘가에서 무덤에 눕는다.
대체로 탄생과 죽음 사이에 간격은 미세한데, 그 간격이 부지런히 흘러가는 사이 얼마만한 고난이 따르고, 어떤 종류의 인간들과 어울리며, 얼마나 허약한 신체에 속하는지를 고려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삶을 어떤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지어다. 그대 뒤에 있는 거대한 시간과 그대 앞에 있는 또 다른 끝 모를 공간인 시간에 주의를 기울여라. 이 무한 속에서 사흘 사는 자와 3세대를 사는 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