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추락하는 남자들의 자화상

강석이 2011. 11. 27. 18:53

"아유 지겨워, 우리집 삼식이는…" 추락하는 남자들의 자화상
 
 
 
늙는 것도 서러운데 점점 설 자리마저 없어지는 것이 요즘 한국 남자의 자화상이다.
 
퇴직 후 집에서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남편은 ‘삼세끼’, 두 끼만 먹는 남편은 ‘이식놈’, 한 끼만 먹는 남편은 ‘일식이’로 통한다. 한 끼도 먹지 않으면 비로소 ‘영식 씨’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얻게 된다고 한다. 아줌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우스갯소리로 나이 든 남편을 바라보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남자는 고개를 숙인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과거에는 가부장적 전통이 살아 있어 나이를 먹어도 남자들이 권위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여권이 신장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남자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것. 늙는 것도 서러운데 점점 설 자리마저 없어지는 한국 남자의 자화상을 들여다봤다.

◆“이삿날 늙은 남편이 챙겨야 할 것은 애완견”

늙은 남편에 대한 농담이 넘쳐나고 있다. “늙어서 보자”는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가장 무서운 말이라는 우스갯소리는 구문이 된 지 오래다. 일만 하던 남편이 은퇴를 했다. 남편은 자신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아내를 위해 남은 생을 살리라 맹세했다. 그리고 나들이할 때마다 아내를 대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조용히 남편을 불러 말했다. “여보 이제 당신 혼자 다닐 수 있지?” 아내가 자신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으로 착각한 순진한 늙은 남편을 비꼬는 농담이다.

이삿날 늙은 남편이 챙겨야 할 것은 애완견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애완견을 꼭 안고 있으면 버림받지 않고 무사히 새집에 입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아지보다 못한 신세에 비유되는 늙은 남편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심기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는데 대접이 고작 이 정도냐”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외출하는 아내를 본 남편의 반응을 나이대별로 풀이한 농담도 있다. 30대 남편은 단호하게 “가지 마”라고 말한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서 남편의 어조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40대 남편은 “어디 가?”, 50대 남편은 “언제 와?”, 60대 남편은 “꼭 나가야 돼?”, 70대 남편은 “들어올 거지?”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남녀가 늙어서 꼭 필요한 것을 소개한 이야기도 한때 세간에 나돌았다.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 돈, 둘째 딸, 셋째 건강, 넷째 친구, 다섯째 찜질방이다.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 아내, 둘째 마누라, 셋째 집사람, 넷째 와이프, 다섯째 애들 엄마다.” 여자는 남편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늙은 남자에게 아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빗댄 것이다.

아내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늙은 남편은 ‘젖은 낙엽’에 비유된다. 떼어버리고 싶지만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젊은 시절 남자는 밖으로 나돈다.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 집으로 찾아드는 경향이 강해진다. 반면 아내는 젊은 시절 집이 생활공간의 전부였지만 나이를 먹으면 바깥 활동이 부쩍 많아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성들의 사회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이면에는 집안일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보낸 젊은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깔려 있다. 하지만 한창 아이들 키울 때는 집안일에 무관심했던 남편은 아내가 아이를 다 키우고 이제 좀 편해지려고 하니 자신을 뒷바라지해 달라고 한다. 아내 입장에서 남편의 태도가 달갑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젖은 낙엽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정신적 사랑 갈구

흔히 남자들은 육체적인 사랑, 여자들은 정신적인 사랑을 갈망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육체적 사랑의 만족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미국 킨제이연구소의 줄리아 하이만 박사가 미국`독일`중국`스페인`브라질 등 5개 나라 40~70세 부부 1천 쌍(평균 결혼 기간 25년)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뒤 올 7월 ‘성 행동 기록’(Archives of Sexual Behavior) 저널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편과 사랑을 시작한 지 15년까지는 육체적 관계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15년 이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성들은 통념과 달리 연륜이 쌓일수록 남녀가 맺고 있는 관계 자체를 중요시하는 성향이 강했다. 하이만 박사는 “여성들은 육아나 가사 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성적인 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반면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부드러운 터치나 잦은 입맞춤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늙은 남편=늙은 수사자?

동물사회에서 늙은 수컷의 말로는 초라하고 비참하다. 젊은 수사자는 암사자를 여러 마리 거느리며 왕처럼 군림을 한다. 그러다 늙어서 힘이 없어지면 젊은 수사자에게 쫓겨 난다. 무리에서 쫓겨난 늙은 수사자는 홀로 방황하다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물개도 마찬가지다. 물개는 싸움에서 이긴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것을 독차지한다. 한마디로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한다. 하지만 노쇠해져 젊은 수컷과의 싸움에서 지게 되면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는다.

혹자들은 여권이 신장되고 평균수명이 늘어날수록 남자들은 점점 야생의 세계로 내쫓기고 있다고 비유한다. 자식들은 머리가 굵어지면 더 이상 아버지를 찾지 않는다. 아내도 노년이 되면 남편 곁을 지키기보다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결국 남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내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달 16일 이런 우려를 엿볼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사회통합위원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저출산`고령화사회 갈등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여성이 남편을 돌봐야 하는 기간이 길어져 노부부 간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질문에 대해 여성의 71.9%가 ‘동의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같은 질문에 대해 남성의 동의 비율은 66.4%였다. 연령대별로는 20, 30대의 동의 비율이 71.3%로 40∼65세(70.1%), 65세 이상(60.7%)에 비해 높았다. 이는 젊은 세대일수록 양성평등 가치관, 노인층일수록 전통적인 사고관이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황혼이혼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올 8월 대법원이 발간한 ‘2011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체 이혼 건수 가운데 동거 기간이 20년 이상 된 황혼이혼 건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19.1%에서 ▷2007년 20.1% ▷2008년 23.1% ▷2009년 22.8% ▷지난해 23.8%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남성의 여성화`여성의 남성화, 원인은 호르몬

20대 남자들은 혈기 왕성하다. 큰소리를 치며 산다. 30대까지도 그런대로 괜찮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 상황이 바뀐다. 모임에 아내를 떼놓고 가던 남편이 아내 없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반면 한사코 남편을 따라가려고 했던 아내는 나이가 들수록 혼자 다니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사람의 탓이 아니다. 호르몬 분비 패턴이 변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남성호르몬은 남자, 여성호르몬은 여자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모두 갖고 있다. 다만 남자의 경우 남성호르몬, 여자는 여성호르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남성성과 여성성이 나타난다. 하지만 중년 이후에는 호르몬 비율이 바뀐다. 남자의 경우 여성호르몬, 여자는 남성호르몬 비율이 높아진다. 그 결과, 남자는 50대부터 여성적인 면을 보이기 시작하다 60대가 되면 행동과 태도에서 여성적인 면이 고착된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지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 경우가 많아진다. 급기야 70대가 되면 근육이 흐믈흐물해지고 젖가슴이 축 처지는 등 몸의 형태까지 여성으로 바뀐다. 하지만 여자는 폐경기 이후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남성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독립적이고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성격이 된다. 또 중년 남편이 작은 일에도 잘 삐치는 반면 중년 여성들은 대범한 태도를 보인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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