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持經功德分 (지경공덕분, 이경을 받아 지니는 공덕)
[지경공덕 15]
須菩提 若有 善男子 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布施
수보리 약유 선남자 선여인 초일분 이항하사등신보시 중일분 부이항아사등신보시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布施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후일분 역이항하사등신보시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勝彼.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약부유인 문차경전 신심불역 기복승피.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有 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유 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
수보리야 만약 어떤 남자나 여자가 오전 중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 만큼 몸을 던져서 보시하고, 오후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 만큼 몸을 던져서 보시하고 저녁 무렵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 만큼 몸을 던져서 보시하고, 이와같이 한량이 없는 백천만억겁동안 그 몸으로 보시하고,
만약 또 다른 사람이 이경 설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에 거역하지만 않아도 공덕이 저복보다 크다.
하물며 써서 베끼고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해설해주면 그 복이 얼마만 하겠느냐. 수보리야, 요점만 말한다면, 이경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은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고, 이름 붙일 수 없고, 그 공덕의 끝을 생각할 수 없노라.
(이루 말할 수 없다.)
如來 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若有人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 悉知是人 悉見是人.
여래 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실견시인.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卽爲荷擔 如來 阿耨多羅三藐三菩提
개득성취 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즉위하담 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着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卽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하이고 수보리 약요소법자 착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즉어차경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 天, 人, 阿修羅 所應供養.
수보리 제제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소응공양.
當知 此處 卽爲是塔 皆應恭敬 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당지 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 작례위요 이제화향 이산기처
이것은 여래가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하며, 가장 높은 법을 얻겠다고 마음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능히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널리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면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을 다 알고 다 보시나니, 그 양을 도저히 측량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 없고, 끝이 없고,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모두 얻으리니.
이와 같은 사람들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자신의 어깨에 둘러 멘 것이니라.(자기 것으로 얻었다)
수보리야 작은 법(소승)을 즐기는 자는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에 사로 잡혀서 이경을 능히 듣지도 못하며 받아 지니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며 남을 위하여 해설해주지도 못한다.
수보리야 이경이 있는 곳마다 일체세간의 신들과 인간들과 아수라 등이 응당히 공양하는 바니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같으니라. 그래서 모두다 응당히 공경하고 절을 하고 주위를 돌면서 예를 다하고, 모든 꽃과 향으로 뿌리는 곳이다.
16. 能淨業障分 (능정업장분, 능히 모든 업장을 깨끗이 한다,)
과거세의 모든 업을 깨끗이 할 힘이 있다.
復次 須菩提 善男子 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부차 수보리 선남자 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
以今世人輕賤 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금세인경천 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다시 다음에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서 이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되, 만약에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고 천하게 여기면, 이 사람은 과거세에 지은 죄업으로 응당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로되,
지금 세상사람들이 가볍게 여긴 까닭으로, 과거세에 지은 모든 죄업이 다 소멸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금강경을 열심히 읽는데, 도리어 사람들이 나를 욕을 하고 미친놈이라고 하며 두들겨 맞기까지 하면, 앞서 말한 천인아수라가 받들어 모시고 공양은커녕, 내 주변 사람들이 구박이 자심하다면 그 까닭은 과거세에 내가 지은 그 죄업으로 보면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데, 금강경 읽은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질 과보가 면제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을 1억을 빌려쓰고 부도가 나서 갚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와서 1대에 천만원 씩에 따귀를 3대만 맞으라하면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2대만 더 때려 달라고 할 수도 있다. 그와 같은 이치로 받아들이면 된다.
원효대사도 파계하면서 주위로부터 비난을 받고, 비로소 중생 속에서 화작을 할 수 있었다.
때로 재앙이 복이다. 항상 재앙을 피하려 하지만 실제 이것이 복이 된다. 우리가 바라는 복이 복 아닌 경우도 있다.
수행자는 죄업을 조기 상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차피 인연이 지은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재앙이 복인 줄 알면, 재앙을 기뻐하게 되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가 그를 괴롭힐 것인가? 무슨 두려움이 있을까?
금강경 제대로 수지 독송하는 사람이라면 공덕에 대한 생각이 없다.
뺨 한대 맞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須菩提 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 於燃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 諸佛
수보리 아념과거무량아승지겁 어연등불전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 제불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
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 不及一 千萬億分乃
약부유인 어후말세 능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어아소공양제불공덕 백분 불급일 천만억분내
至算數譬喩 所不能及.
지산수비유 소불능급.
수보리야, 내가 과거를 생각해 볼 때 한량없는 겁전에 저 연등부처님 전에 있을 때, 그 이후로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에게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공양을 올렸나니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저 말세에 능히 이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면 얻은바 공덕은,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린 공덕이 그(수지독송한 사람의 공덕에)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 천 만억분의 일과 수로 계산하는 비유로는 이르지 못하느니라.
겁이란 한량없는 긴 세월, 가장 작은 단위로 계산된 것이 팔백사십만년이다.
백천만억은 10경(100x 1000)이다. 이 숫자는 머리 속에 감이 오지 않는 숫자이니 엄청나게 긴 세월을 나타내게 따로 숫자를 쓴 것이다.
나유타는 인도의 숫자개념으로 중국의 만 단위, 서양의 1000단위 와 달리, 기본단위가 천만 10의 7승(구지), 그다음이 이것을 제곱하면 아유타 10의 14승, 세 번째가 다시 제곱 10의 28승 이것이 나유타이다. 이것이 10개 까지 있어서 중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으니 새로 만든 말이 무량, 아승지 이런 말이 나온다.
무량은 104번째 아승지 105번째 단위를 말한다고도 한다(정확하지 않음).
팔백사천(800 x 4000)으로 보고, 본래는 팔만사천으로 표기되는 것이 옳다고 봄. 팔만사천곱하기, 천만 곱하기 억 곱하기 나유타가 된다. 그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렸다는 뜻이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은 한량이 없다.
須菩提 若善男子 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 具說者 或有人聞 心卽狂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어후말세 유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아약 구설자 혹유인문 심즉광
亂 狐疑不信. 須菩提 當知 是經義 不可思議 果報 亦不可思議.
란 호의불신. 수보리 당지 시경의 불가사의 과보 역불가사의.
수보리야 착한 남자와 여자가 있어서, 저 말세 이 경을 수지 독송하게 되면, 얻은바 공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미쳐서 혼란스러워 여우처럼 의심하여 믿지 아니하니라.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라. 이 경의 뜻은 가히 헤아릴 수 없으며, 그 공덕도 또한 헤아릴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 공덕이 도대체 얼마나 크기에 저렇게까지 표현하실까 ?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은 한량이 없다.’ 라는 표현으로 불가하다.
초입에, 허공보다 더 크다, 삼천대천세계보다 더 크다,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많은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 만큼의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로 보시해도 그 보다 더 크다.
큰게 실체가 없다. 그렇게 보시해도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 만큼 목숨으로 보시를 하되, 하루에 3번씩 그것도 한량없는 세월동안해도 그 보다 더 크다, 한량없는 부처님께 한량없는 세월 공양을 올린 것도 비유가 안된다. 이것도 사실에는 미치지 않는다. ‘사실대로 말하면 듣는 사람이 미쳐 버릴 것이다.’ 라고 표현 하신 것이다.
여우처럼 의심한다.
이 뜻은, 여우가 의심이 많아 절대로 속지 않지만 자기에게만 속는다.
여우가 어느날 길에서 생고기를 발견합니다. 그걸보고 매우 기뻐하며 ‘나는 복이 정말 많다. 이 복은 다른 짐승은 누리지 못한다.’ 하며 먹으려다 생각을 착 바꾸었다. ‘아니지, 이건 독이든 미끼 일지 몰라. 다른 짐승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먹겠지만, 나는 먹지 않아! 여우는 속이지 못해. 누가 이런 고기를 길에 버려?’
그러다 산모퉁이까지 가서는, ‘아니지 미끼라면 흙을 묻히지 않고 쟁반에 담아 돌 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어찌 길에 놓겠는가? 이렇게 흙이 묻어 있는 걸 보면 미끼가 아니지, 이건 그냥 떨어진 것이다. 다른 짐승들은 모두 독이 든 미끼인 줄 알고 못 먹겠지만, 여우는 그렇지 않아!’ 하며 먹으려 하다, 다시 탁 생각을 바꾼다. ‘아니 아니지 쟁반에다 놔두면 짐승들이 주워 먹고 독약인중 알고 안 먹으니 자연스레 놔두면 미끼가 아닌 줄 알고 다른 짐승들은 먹겠지만 나처럼 똑똑한 여우는 속일 수 없어 ..’ 이렇게 백번을 의심한다고 한다. 이를 여우처럼 의심하여 믿지 아니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딱 믿고 수지 독송해야 하는데, 늘 이렇게 의심한다. 절에서 금강경 강의를 들으면, 그래 맞아 다 꿈같은 거야 하고는, 집에 가서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오면, 눈이 홱 돌아가면서 맞긴 뭐가 맞아. 그렇게 하다가, 또 절에 다니면서 스님 법문은 정법이야 하면서 다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귀가 솔깃해져, 어디 영험한데 가서 기도한다고 난리치다. 또 돌아와, 맞아 역시 부처님 말씀이 옳아! 그렇게,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여기까지가 금강경의 상편이 끝납니다.
경계에 부딪히면 탁! 한 생각 돌이켜야하는 것이다.
번뇌가 있는 세계에서 번뇌의 뿌리를 놓아 버리는 바로 깨달음이다.
그래서 놀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거역하지만 말아라.
이 세상은 오로지 자기가 주인되어 사는 것이다. 남의 공부에 간섭할 일이 없다.
재물이나 지위, 뭐 그런 걸로는 이제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오로지 많아서 탈이다.
공부도 너무 많이 시키니 오늘날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오로지 버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마음속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부자인 것이다.
17. 究竟無我分 (구경무아분)
[구경무아 17-1]
상편에서 법문은 지금까지 삶의 방식을 싹 바꾸어 놓은 셈이며, 후반부터는 세밀한 부분을 점검하며 깨달음의 길을 나아간다. 여기서 부터는 해탈의 길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들으면 가벼이 짐을 내려놓게 될 수 가 있을 것이다.
爾時 須菩提白佛言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이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되,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이는 어떻게 그 마음을 가지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처음에서 나왔던 같은 질문이다. 여기 한 남자, 혹은 한 여인이 있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다. 오늘 바로 지금 마음을 냈습니다. 깨달음을 얻겠다고, 참으로 행복하고 참으로 자유로와 지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어떻게 마음을 가지면 참으로 자유롭고 참으로 행복한 그런 삶을 살수가 있겠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동일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며 읽으실 필요가 있다 하시는군요.
나의 삶도 나의 인생이 원하는 바대로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확신에 차서 안심하며 분명한 길을 가고 싶습니다. 맑고 밝은 길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신통자제한 도사가 되고자 함도 아니고, 뛰어나 도승이 되고자 함도 아닙니다. 바로 내 인생을 정말 보람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식견으로는 그런 인생이 살아지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합장공경하며 저희 같은 중생들이 참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수가 있습니까? 라고 세존께 청했다는 것입니다.
佛告. 須菩提 若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當生如是心 我應滅度一切衆生
불고.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당생여시심 아응멸도일체중생
滅度一切衆生已 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하되, 만약에 선남자 선여인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를 원하면 마땅히 이렇게 마음을 내라.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을 제도하리라’ 할지니,
내가 저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제하리라. 지금까지 나는 사랑 받기만을 원했지만 이제는 그들을 모두 사랑하리라. 지금까지 남으로부터 도움 받길 원했지만 지금부터는 그들 모두를 도와주리라, 내 지금까지 의지처를 찾았는데 이제 그들의 의지처가 되리라. 이렇게 마음을 내라.
일체 중생을 멸도하여 마쳐서는, 사실은 멸도를 얻은 중생이 한 사람도 없음이니라.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야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니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보살피고 의지처가 되주어서, 뭇 중생을 모두 구제해서 마쳤다 하더라도, 사실은 단 한사람도 내 도움을 받은 자도, 사랑을 받은 자도, 보살핌을 받은 자도, 내가 의지처가 되어 준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도와주고 이끌어 안온한 세계로 모두 다 이끌었다하더라도 내게 도움 받은 중생은 한명도 없다.
나다, 하는 사람이다, 중생이다 하는 생각, 존재다 하는 망상을 갖고 있으면 보살이라 하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을 청정하게 대하고 진실을 말하고, 아픈 중생을 치료하여 아픔을 낫게하고 모든 중생을 보살펴라. 그러면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그리하여 갖가지 괴로움에서 벗어나더라도 사실은 내가 그들에게 도와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알아라. 왜냐하면, 내가 너를 도운다 하면 이미 내다하는 상에 빠지고 도움을 받는 너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상을 짓게 되기 때문에 이리되면 마치 꿈속에서 타인을 돕는 것과 같다.
실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공하다. 공하다는 말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아니며 각 존재는 본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다만 그 중생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빠져서 괴로워 할 뿐인 것이다.
所以者何 須菩提 實無有法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소이자하 수보리 실무유법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수보리야 사실은 법이라고 할 것이 없을새,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구경무아 17-2]
얻으려는 마음을 바꾸어 줄려고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행동해야한다. 그러면 깨달음에 도달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내가 그들을 보살폈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존재는 공하므로, 일점일획도 보태거나 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장 가난한자는 가장 부족함이 많은 자이며,
가장 부유한자는 가장 부족함이 없는 자이다.
최상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것이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할 어떤 정해진 한 법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에 수보리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부처님께서는 연등 부처님께로부터 깨달음을 얻으시고 미래세 부처님이 될 거라는 수기를 받으셨을까?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於燃燈佛 所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不.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 소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부.
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佛於 燃燈佛所 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불야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어 연등불소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 부처님 처소에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느냐?
(그때서야 법이라는 상에 집착하고 있음을 깨닫고)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설하신 뜻을 알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 부처님 처소에서 사실은 한 법도 있음이 없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나이다.
최상의 법이라 할 그 어떤 법도 없음을 깨달으셨습니다.
佛言. 如是如是.
불언. 여시여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렇고 그러하다, 그렇고 그러하다.
須菩提 實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수보리 실무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수보리야 사실은 법이라 할 한 법도 없음을,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에 이것이 법이다 할 것이 있어서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燃燈佛 卽不與我授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이실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是故 燃燈佛 與我授記 作是言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연등부처님께서 ‘네가 내세에 마땅히 깨달음을 얻어 그 이름을 석가모니불이라 하리라’고 수기를 주시지 아니하련만,
사실은 한 법도 있음이 없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말씀 하시기를, ‘너가 내세에 부처를 이루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 하시니라.
내가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 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연등부처님께서 나를 보고 ‘너가 내세에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불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법이라는 상을 짓게 된다. 이것이 행복이다 저것이 행복이다 하며 항상 상을 짓는다. 예전에 파랑새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처마 끝에 파랑새가 앉아있더라 하는 것이 바로 행복과 자유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가 없다.
모두 자기 마음이 짓는 바이기 때문에 자기를 돌이켜 살펴보면 바로 찾을 수가 있다.
그래서 이것이 깨달음이다하고 찾아다니면 곤 권력을 찾듯이 밖으로 구하는 마음이 된다. 그 생각을 돌이켜 중생을 도와주고 살펴주고 의지처 되는 마음을 내면, 어느덧 자유롭고 행복한 경지에 있다. 마음속 응어리는 없어지고 탁한 마음은 맑아지고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져 있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에 의해 갖가지 괴로움이 생기고, 안으로 돌이켜 살펴보면 모두가 마음이 짓는 바라서 그 마음이 본래 공한 줄을 알게 되면 봉사가 눈을 떠 듯이 천하가 그대로 밝아진다.
그런데,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한 생각을 내면 이미 아상이 생기고 깨달음이라는 상이 생기고 너와 나, 나와 세계를 구분하고, 주관과 객관을 나누게 되니 이것은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가 아니다.
‘나다’ 하는 생각을 놓아 버려야 너와 내가 사라져 버리고, 세계가 연기되는 동체임을 알게 된다.
何以故 如來者 卽諸法如義.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若有人言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약유인언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실무유법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찌한 까닭이냐, 여래라 하는 것은 모든 법이 뜻과 같음(있는 그대로)이니
만약에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
수보리야 사실은 이것이 법이다 할 것이 없어서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느니라.
여래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제법)이 있는 그대로 뜻과 같다(여의다). 상이 없다는 것이다. 옳다 그르다, 크다 작다,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두 가지 모양이 없다.
그래서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으니, 취하고 버릴 것이 없어서 할 것이 없는 세계가 바로 깨달음의 세계이다. 그럴 때 사람들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돌이켜서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단정을 짓고 그것을 뜯어 고치려하니 어렵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을 돌이켜 상을 내려놓으면 아이는 본래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애쓸 일도 없다. 다만 물이 필요하다 하면 물을 주고 밥이 필요하다하면 밥을 줄 뿐이다.
그러니 내가 그들을 구제한다 하지만 실로 구제할 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래로부터 고요하기 때문이다.
[구경무아 17-3]
須菩提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於是中 無實 無虛.
수보리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 무허.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시고 여래설일체법 개시불법.
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그 최상의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 가운데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여래의 법은 제법이 공한 것이다. 분별 망상을 떠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제법이 모두다 불법이라고 말씀하시느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진여가 그대로 드러남이다)
수보리야 일체 법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법이 아닐새, 이름이 일체법이니라.
須菩提 譬如人身長大. 須菩提言. 世尊 如來說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수보리언. 세존 여래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그 몸이 아주 크다 할 때, 큰 몸이라 할 것이 있느냐?
(불확실한 듯하여 부처님께서 다시 비유를 통해 물으신다.)
수보리 말하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몸이 크다 하시는 것은 크다고 할 실체가 없을새 인연따라 이름하여 크다고 불리웁니다.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 無量衆生 卽不名菩薩.
수보리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 무량중생 즉불명보살.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에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였느니라.’ 라고 말하면 즉 보살이라 이름 할 수가 없다.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 無人 無衆生 無壽者.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 명위보살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야 사실은 법이라고 할 것이 없을 새, 그 이름이 보살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체법이라고 하는 것이 나라고 할 것, 사람이라고 할 것도, 중생이라 할 것도, 존재라 할 것도 없느니라.
須菩提 若菩薩 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수보리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말하되, 내가 마땅히 불토를 장엄한다고 하면, 곧 보살이라 이름 할 수가 없느니라.
내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리라, 불국정토로 만들리라 하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 내 마음 속의 갖가지 허상을 버리는 것이 정토를 장엄하는 것이다. 내 남편을 이렇게 고쳐 청정하게 만드리라 하면 보살이 아니다. 남편을 바로 그대로 청정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깨우쳐 바라보는 것이 가장 존중하는 태도이다.
何以故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하이고 여래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어찌된 까닭인가 하면, 여래가 불토를 장엄한다 하는 것은 장엄이라 할 것이 없어서 이름하여 장엄한다고 한다.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說 名眞是菩薩.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설 명진시보살.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내가 없는 법’을 통달하면 부처님께서 참으로 보살이라고 말씀하시느니라.
나라고 할 것도 없고, 법이라 할 것도 없는 자를 보살이라 한다.
생명 가진 것을 사랑하라.
지금까지 나는 늘 무언가를 원하고, 늘 구하고, 그것이 잘 안되니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가? 하고 힘들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바로 뭇 중생을 사랑하라. 병든 자를 보면 치료할려고 생각하라. 배고픈 자들은 먹여 주고, 외롭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면 위로 할려는 마음을 내라. 뭇 중생을 연민의 마음으로 그들을 어여삐 보라. 그러면 이미 내 괴로움은 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었다고 생각하지마라. 그것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아라. 다만 발을 헛 디뎌 물에 빠진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순간 나의 도움으로 물에서 나올 뿐. 그렇다고 해서 그게 그의 인생에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상황에서 병이 났으니 치료 받아야했고 배가 고프니 먹어야했을 뿐, 우리는 그것이 없으면 그가 불쌍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미 물질에, 윤리에, 도덕에, 형상에 사로 잡혀있어서 그런 생각을 내는 것이다. 그가 목이 말라 물이 필요한 것일 뿐, 또 불쌍하지 않다 해서 물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제법이 공함을 알아야한다.
필요 없는 것을 주겠다고 설치는 것은 옳치 않다.
타인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 필요없는 것을 주는 것이 두 번째 문제이다. 그러고도 자기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도망가면 그 아이는 불효라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그 아이가 자기 인생을 살게 내버려 두어야한다.
늘 참회하고 살아야한다.
‘아직 다생겁래의 습기를 버리지 못해 이런 것을 용서하소서.’
머리 속의 망상만을 제한다면 바로 깨우친다.
18. 一切同觀分 (일체동관분, 일체를 하나로 본다)
수보리의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라고 마음을 내고 그렇게 실천을 하라. 그리고 내가 한 중생도 구제했다는 생각을 내지마라.
깨달음을 얻었다는 생각도, 불토를 장엄한다는 생각도 내지마라. 그러니 그 어떤 것에도 아가 없어야 진시 보살이라 할수 있다.
그때 수보리는 제도할 중생이 없어서 제도함도 없고, 또 제도할 나도 없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엇으로 중생을 보느냐?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내가 중생을..’ 하면 벌써 둘로 나누어지게 된다.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구하는 자와 구하는 대상이, 주객이 나누어지게 된다. 두 가지 모양을 짓는 것이다. 두 가지 모양을 짓는 것은 상에 사로잡히는 것이 된다. 그렇게 해서 일체가 하나임을 즉 동체임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게 됩니다.
손이 발을 씻기 듯이 둘이라는 생각도 없고 바라는 바도 없는 진여의 세계 즉 부처님의 세계이다.
일체를 하나로 본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肉眼 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육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육안.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天眼 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천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천안.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慧眼 不. 如是 世尊. 如來有慧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혜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혜안.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法眼 不. 如是 世尊. 如來有法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법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법안.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 不. 如是 世尊 如來有佛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불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불안.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육안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천안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안(신통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혜안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혜안(지혜의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법안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법안(보살의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불안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안(부처의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안에 대해 물어 보신다.
법안: 일체만법의 변화무쌍함을 꿰뚤어 보는 눈.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
육안, 천안(신의 눈), 혜안은 성문연각의 눈, 법안은 보살의 눈, 불안(부처의 눈)
여기서는 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안다는 뜻이며, 감각기관을 육근이라고 바깥 경계를 육경이라 한다. 촉으로만 아는 것을 부딪쳐 보고 아는 것. 가장 낮은 것이고, 두 번째가 맛을 보고 아는것(설미), 향기를 맡고 아는 것, 귀로 듣고 아는 것, 눈으로 보는 것 등이다. 가장 하등한 것으로 부딪쳐보고 알지만, 좀 나은 것은 맛을 보고 안다, 다음은 향기를, 그 다음은 눈으로 보고 알게된다. 모든 생물은 이것을 갖추고 있으나, 하등할수록 하위의 감각기관을 이용한다. 장미를 눈으로 보면 충분히 안다 할 수 없다. 그건 향기를 맡아보아야한다.
온전하게 알려면 여러 가지 감각기관을 이용해야 한다.
여래께서 육안이 있느냐 하신 것은 눈 뿐 아니라 5가지 감각기관을 가진 것을 말한다. 우리와 같이 오감을 다 가지고 계신다. 개나 물고기와 같다. 모든 생물은 모든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눈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의 수준이 다르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사람 눈에 보이는 찬란한 세계를 보지는 못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다같이 가지고 있다고해서 다 같지 않고, 다르다고 해서 못한 것도 아니다. 다만 아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여래께서도 우리와 같이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으시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알고 계신다.
천안이라는 것은 다섯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지 않고 알 수 있는 능력으로 물론 천안 천이 모두 통털어 말한다. 안보고도 알고, 안듣고도 안다. 신족, 숙명, 타심이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이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알 수 있다.
굼뱅이는 장애물이 있을 때 부딪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반면 우리는 눈으로 미리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이걸 넘어서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다 이 감각기관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나면 신비하다고 한다.
구더기가 부딪힐 걸 미리 아는 사람이 있다 해서, 또 구더기가 그를 신으로 섬긴다해서 구더기 인생이 바뀔까?
[일체동관 18-2]
우리가 갖지 못한 능력을 신들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신통력이라고 한다.
여래는 혜안을 가지고 있느냐? 갖고 있다.
천안, 이걸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선하고 악하고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 수 있는 눈이 혜안이다.
원수라고 할 것이 본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일체 법이 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눈이 혜안이다.
따라서 신통(천안)은 전혀 수행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없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있어서 안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도로 삼지 않으며 수행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육안과 천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혜안이다.
생물학적인 인간으로서 가장 잘 발달 한 것이 육안이다. 누구에게나 천안을 가질 능력이 있다. 개발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것(신통)을 금하셨다.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는, 성인의 유에 드는 것은 이 혜안부터이다. 오신통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천안까지는 번뇌가 있고, 질투심이 있고, 원수 갚을 일도 있고, 재물에 대한 집착 등 모두 다 있다. 천안과 신통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오감에 끄달리는 것도 신통에 끄달려서도 안된다. 여기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번뇌가 끊어진다.
손으로 만져서 알 수 있는 것은 뭐 뭐가 있다는 정도까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천안이 열리면, 전혀 다른 것을 알 수가 있다. 악한지 선한지 까지도, 알 수가 있다. 사람 보는 눈이 모자란다는 것은 바로 이 천안이 없다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 사람을 다 알 수가 없다. 어떤 경계에 부딪힐 때 화를 낼지 안 낼지를 알 수가 없다. 도인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혜안은 경계에 휩쓸려 희노애락 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성인의 류에 든다. 성문 연각의 눈이다.
여래는 법안이 있느냐? 예 법안이 있습니다.
혜안이 제법이 공한 줄 아는 것이라면, 그 속에서 갖가지가 중생의 인연을 따라 수없이 벌어지는 만상을 하나하나 빠지지 않고 다 아는 것이 법안이다.
혜안으로는 중생을 구제할 수가 없다. 법안이 열려야 보살이라 한다. 공이 색한 줄을 아는 것이다. 파도하나하나가 나고 죽는 것으로 아는 것이 중생이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고요로부터 갖가지 풍랑과 파도가 일어남을 다 훤하게 안다. 희노애락에 빠져있는 중생을 다 구제 할 수가 있다. 혜안에 집착하면 다시 인연을 따라 기기묘묘한 세계를 알 수가 없다. 집착하면 법안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야 참으로 대승보살의 세계에 들 수가 있다.
혜안의 성문은 자기 혼자 쪽배로 건너갈 수가 있지만, 중생을 모두 태우고 큰 배를 몰고 갈 수는 없다.
여래에게 불안이 있느냐? 네, 여래는 부처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의 눈이라는 것은 일체가 하나임을 아는 것이다. 중생이 나와 별개가 아니다. 그래서 거기는 구제한다 라는 것이 없다. 몸이 가면 다리가 가고, 다리가 못가면 몸이 못간다.
그런데 여래는 육, 천, 혜, 법, 불안 모두를 가지고 있다.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보완하는 하나이듯 부처님의 오안도 하나이다. 부처님의 자비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동체로서의 자비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나누어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각각에 집착하여 한치 앞도 보지 못한다.
굼벵이는 나머지 감각기관이 덜 발달하여 작용이 안되니 헤메게 되고, 우리는 혜안 법안이 없으니 항상 삶이 고단하다. 천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신통이라 빠져서는 안된다.
보통은 이러한 다섯가지 감각기관을 통 털어서 육안이라 하고, 육안이 청정하다는 것은 육근경계에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하며, 천안이 청정하다는 것은 그런 신통력에 빠지지 않는 것이며, 혜안이 청정하다는 것은 이것이 진리라는 법집을 만들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恒河中所有沙佛說是沙 不. 如是 世尊. 如來說是沙.
수보리 어의운하 여항하중소유사불설시사 부. 여시 세존. 여래설시사.
須菩提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 有如是沙等恒河.
수보리 어의운하 여일항하중소유사 유여시사등항하.
是諸恒河所有沙數佛世界 如是寧爲多 不. 甚多世尊.
시제항아소유사수불세계 여시영위다 부. 심다세존.
佛告. 須菩提 爾所國土中所有衆生 若干種心 如來悉知.
불고. 수보리 이소국토중소유중생 약간종심 여래실지.
[일체동관 18-3]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항하 가운데 모래수를 모래수가 많다고 하느냐 아니하느냐?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모래가 많다고 말하십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나의 항하 가운데 모래수와 같은 수의 항하가 있다고 하자. 이 모든 항하의 모래수 만큼의 부처님 세계가 있다면 많으냐 많지 않으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이 모든 국토 가운데 있는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알고 있느니라.
한 중생의 번뇌는 팔만사천개 즉 한량이 없다. 심보는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한 중생의 마음도 다 알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이세계의 중생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생의 수도 한량없고, 그 모든 번뇌는 더욱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훤히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하이고 여래설제심 개위비심 시명위심.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소이자하 수보리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어찌된 까닭인가? 여래께서 말씀하시되 마음이라 하지만 마음이라 할 것이 없을새, 그 이름이 마음이니라.
제법이 공한 줄 알면, 중생의 번뇌는 실제로 공하다.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이 다 공하다.
일체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마음이라 하는 것이 모두 그 실체가 없어 이름하여 마음이라 할 뿐 이다.
어찌한 까닭이냐,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느니라.
도대체 마음이라 할 것이 없느니라. 그 많은 번뇌를 어찌 다 해결할까 하지만 번뇌랄 것도 본래 없는 것이다.
자기만 깨달으면 모두 꿈꾸고 있는 것을 다 안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지나가고 없다. 오직 생각 속에만 남아있을 뿐, 과거를 꺼집어 내어와서 공포를 느낄 뿐이다. 단지 영화를 보고 무서워 하는 것과 같다. 사실은 없지만 그 화면에 빠져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착각에 빠져 드는 것이다.
현재는 여기에 있지만, 머리 속에서는 과거의 테이프가 돌아감으로 갖가지 괴로움이 생겨 나는 것이다. 과거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밭에서 일하는데 3만원을 준다면, 과거 만원 받고 일하던 사람은 기분이 좋다. 신나게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높은 직종에서 10만원을 받고 일하던 사람은, 내가 왜 이짓을 해야하느냐하면서 온갖 분별을 낼 것이다. 이것을 두고 과거에 사로잡혔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은 과거는 꿈처럼 환상처럼 단지 테이프에 담겨있을 뿐인 것이다. 존재하지 않느 것이다.
미래심 불가득이다. 근심걱정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모든 생각.. 코가 약간 작은데, 남편이 날 버리지나 않을까? 꼭 당장 그 일이 내 앞에 닥칠까 바 걱정하는 것이다. 걱정 떠날 일이 없다. 미래는 상상 속에만 있고 현재에 없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놓으면 근심걱정이 없어진다.
오직 눈앞의 현재만 있는데 현재는 순식간에 과거로 되고, 그러니 현재라 할 것도 없고 또 마음이란 종잡을 수없이 시시때때로 변한다. 그런데 무엇에 집착 할까.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니가 그때 그랬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이라하는 것은, 마음 마음하지만 마음이라 할 것도 없다. 는 뜻이다.
과거 달마대사에게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다시 흩어지고 나서 거의 9년째에 그때까지 떠나지 않고 있던 혜가 스님에게 달마 대사께서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하러 여기에 왔느냐?” 그러자 혜가 스님께서 “안심인명의 도를 구하러 왔습니다.” 하였습니다. 마음이 편안하게 하는 도를 구하러 왔다는 것은, 지금 마음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래, 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테니, 그 불안한 마음을 여기 내놓아 보아라.”
그래서 한참 후에 혜가 스님께서, “내놓을래야 내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그러니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노라.” 하였다.
[금강경 도사 이야기]
예전에 금강경을 해박하게 알고, 관련 주석이란 이란 주석은 다 아시는 금강경 박사였던 스님이 있었습니다.
성이 주씨요 별명을 금강이라 하였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경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마음을 깨쳐 도를 설한다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그래서 어떤 놈이 사기를 치나? 내가 이놈을 혼을 내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용담선사인데 금강경 주석서를 모두 매고 그분 계시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절 입구쯤 산 아래 도착 했을 때, 어떤 노파가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마침 시장하여, “노인장, 점심 요기나 하게 떡이나 좀 주시오”
그러니 할머니가 쳐다보더니, “스님 등에 그건 뭐요?” “아 이건 금강경 주석서요.” “아 그래요. 내가 지금 금강경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데 물어볼 것이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 볼테니 알려주시면 떡을 공짜로 주고, 모르면 돈을 주어도 떡을 팔지 않겠소.”
이 금강경 박사가 생각하길 참 잘되었다. 돈까지 아끼게 되었으니 .. “그러시오.”
그래 할머니가 묻길,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이라 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 하시오?” 점심이라 하니 할머니는 점 점자에 마음 심자로 해석하여 그렇게 물은 것이다. 그러니 스님이 그만 꽉 막혀 답을 못해 버렸습니다.
여태까지 주석서에 그런게 없었거든요.
사실 이것은, ‘그것도 모르는 놈이 그거 뭐 하러 지고 다니느냐?,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놈이 밥은 뭐 하러 먹냐?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그런 뜻이지요.
그렇게 해서 망신을 사고, ‘아, 이거 떡 파는 할머니까지 도가 이 정도인가? .. 스님은 고사하고, 만만치 않군. ’
여기서 알아들어야 하는데 아직 아상이 있으니,
선사를 찾아가서는, “용담에 왔는데, 용도 없고 연못도 없네”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사께서는, “자네 아직 제대로 못 본거네” 하셨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어, ‘내가 뭘 몰라, 다 아는데’ 하면서 금강경을 꺼내 몇 시간을 이야기하였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 선사께서, “그래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이야기하세” 그러면서 배웅하며 촛불을 주어 그걸 들고 신발을 찾으러 내려가는데, 선사가 촛불을 확 불어 꺼 버렸다. 그러니 촛불에 의지하여 환하던 세상이 촛불이 꺼지니 천지가 깜깜 해져 버렸다.
그때야 확연히 깨쳤다. 나중에 이분이 유명한 덕산 선사가 되었다. 이후에 도가 뭐냐하고 물어 오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주장자로 대갈통을 후려쳤다고 한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마라’는 말씀이지요. 모두 쓸데없는 생각(상)을 지어 다니는 것이다.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이라 할 것이 없다. 그 이름이 마음이다
조금도 가만있지 않고 뜬 구름처럼 떠도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마음을 붙들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한 생각을 잡고 갖가지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원효대사께서도 ‘한 생각 일어나니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 사라지니 만법이 사라지네.’
일체가, 이 마음이 일으키는 갖가지 번뇌 망상에 의해 이 세상이 그리고 세계가 이루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이 텅빈 줄 알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19. 法界通化分 법계통화분, 어떻게 법계를 교화하는가?
부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대상에 집착하지 아니한다. 어떤 상도 짓지 않으시며 거기에 사로잡히지 아니한다.
그 외 천안이 있어서 성격 마음까지 아신다. 보이는 것 외에도 다 아신다.
더 나아가 진리의 눈 혜안이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꿈과 같은 것, 허망한 것이라는 꿰뚤어 아신다. 그래서 집착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세상이 진리의 바다로부터 출렁이는 파도처럼 일어나는 그 하나하나를 보시고 있다 이를 법안이라 한다. 그래서 중생의 근기따라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사람으로서의 정직함과 신들의 능력(선량함)과 세상을 떠나 수행하는 수행자로써의 태도(청빈함)를 가지고 계시면서 중생의 고통이 있을 때 함께하는 보살심을 가지고 있으신다. 그리고 이를 뛰어 넘어 ‘해도 함이 없는’ 부처의 눈을 가지고 계신다.
한 물건도 그 누구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알고계시기 때문에, 내거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누구를 위해 주었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10호로 불리우신다.
부처와 중생이 둘 아니라 한 몸이다.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다. 그래서 한 몸으로 한 눈으로 보는 것이다 하여 일체 동관분이다.
구제하되 했다는 상을 짓지 않는다 하니 무위의 행이라 한다.
한 몸으로서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내 몸의 가시를 빼듯이 그런 마음으로 교화하시는 것이다. 가시를 뺄 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多 不.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 부.
如是 世尊 此人 以是因緣 得福 甚多.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 심다.
須菩提 若福德有實 如來不說 得福德多. 以福德無故 如來說 得福德多
수보리 약복덕유실 여래불설 득복덕다. 이복덕무고 여래설 득복덕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시한다면, 이 사람은 이런 인연으로 얻을 복덕이 많으냐 많지 않으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이와같은 인연으로 얻은바 복이 매우 많습니다.
수보리야, 만약에 복덕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말씀 하시지 아니하시련만, 이 복덕이라는 것이 없는 까닭으로 여래가 복덕이 매우 많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깨달음의 세계에서 보면, 복이라 할 것이 없다. 이 세계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에서 오는 것이다. 이것을 담는 것이 식물이다. 우리는 여기에 담겨있는 에너지를 소화시켜 꺼내어 사용하는 것이다.
동물을 먹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보면 태양은 많은 복을 짓고 있다. 이것이 생명을 유지케하는 근원이다. 그러나 태양은 아무런 바램도 없고 차별없이 비춘다.
그러나 결과는 달리 나타난다. 자기 업식따라 다르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그러신다. ‘나의 가르침은 빛과 같다.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숨겨서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만 은밀히 전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눈을 감고 있다면 보지 못한다.
가치있다는 생각이 꿈같은 것이다.
20. 離色離相分 (이색이상분, 색도 모양도 떠나야한다)
부처는 형상이 아니다. 어떤 능력도 아니다. 그러나 부처라 하면 그런 것들을 연상한다.
須菩提 於意云何. 佛 可以具足色身見 不.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色身見
수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구족색신견 부.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색신견
何以故 如來說 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
하이고 여래설 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可以具足諸相見 不.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諸相見.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가이구족제상견 부.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제상견.
何以故 如來說 諸相具足 卽非具足 是名諸相具足.
하이고 여래설 제상구족 즉비구족 시명제상구족.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님은 몸매가 잘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몸매가 잘 갖추어진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어찌한 까닭인가, 여래께서 몸매가 잘 갖추어졌음을 말씀하심은, 잘 갖추어짐이라고 할 것이 없을 새, 이름하여 잘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수보리야 저 뜻이 어떠하냐, 여래가 모든 상이 잘 갖추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느냐? 모양으로 볼 수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모든 상이 구족된 것으로 여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어찌한 까닭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상이 잘 갖추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잘 갖춰어 졌다고 할 것이 없어서, 다만 그 이름이 모든 상이 잘 갖추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황금 빛나는 몸매에다 미간에는 백호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보면 알 수가 있다. 그 여자 예쁘다 해도 예쁘다고 할 실체는 없다. 다만 예쁘다고 할 따름이다. 잘생겼다 못생겼다 하는 것은 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우리는 항상 상을 가지고 있고, 남편은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 너는 요렇게 해야 하고 너는 요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 범주에 맞으면 좋아라하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틀렸다고 한다.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은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몰라서의 문제가 아니다. 그 상을 버려야 참으로 행복하고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걸 가지고 있는 한 결코 부처를 볼 수가 없다.
색과 상을 떠나면 여래를 보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그리는 어떠한 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다.
21. 非說所說分 (비설소설분, 설 하되 설 한 바 없다)
설한 것이 설한 것이 아니다.
須菩提 汝 勿謂 如來作是念 我當 有所說法 莫作是念.
수보리 여 물위 여래작시념 아당 유소설법 막작시념
何以故 若人言 如來有所說法 卽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하이고 약인언 여래유소설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시명설법
爾時 慧命須菩提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於未來世 聞說是法 生信心不.
이시 혜명수보리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어미래세 문설시법 생신심부.
佛言. 須菩提 彼非衆生 非不衆生.
불언. 수보리 피비중생 비불중생.
何以故 須菩提 衆生衆生者如來說 非衆生 是名衆生
하이고 수보리 중생중생자여래설 비중생 시명중생
수보리야 여래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지 마라.
‘내가 마땅히 법을 설하는 바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하신다고 생각하지마라) 이런 생각을 짓지 마라.
어찌한 까닭인가, 만약에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법을 설한바 있다고 하면 곧 부처를 비방한 것이 된다. 그것은 내가 설한 바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수보리야 설법이라하는 것은 가히 설할 법이 없는 것이어서 법을 설한다 말할 뿐이다.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되, 세존이시여 저 미래세에 어떤 중생이 있어 이경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 저 중생은 중생이라 할 것도 없고 중생이 아니다라고 할 것 도 없다.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야 중생 중생하지만 중생이라 할 것이 없으므로 중생이라 이름한다.
서울 가는 길을 물었다 어떤 사람이 물으니 동쪽, 어떤 사람이 물으니 서쪽이라 하신다. 그래서 부처님은 서울 가는 길을 천개 정도 아시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아무런 길도 정해놓고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중생이 물을 때 그의 위치에 따라 답이 나오는 것이다. 중생의 근기 따라 중생의 번뇌 따라 그냥 나오는 것이다.
부처님은 인연따라 법을 설하신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라면 항상 겸손해야 하며, 늘 당당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기가 죽을 일은 없다. 얻을 것이 없는데 기 죽을 일은 더욱 없다.
넘어지면 또 다시 일어나고,
서울에서 부산 가는데 비행기가 가장 빠르지만, 돈이 없어 그러면 공사장에서 일해서 돈을 벌어 가는 게 빠를까? 삼등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 빠를까?
조건이 없어야, 조건을 버려야 깨달아 진다. 그러면 이러이러하게 되느냐?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 하거나, 남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바뀌어야 한다.
일체중생을 구제하라 하면, 자기 속의 상을 깨트리는 것이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일체중생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이 구제하는 것이다.
자기 상을 버려버리면 일체중생이 그대로 부처임을 알게 된다.
22. 無法可得分 (무법가득분, 가히 얻을 법이 없다.)
須菩提白佛言. 世尊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爲無所得耶. 佛言. 如是如是
수보리백불언, 세존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위무소득야. 불언. 여시여시
須菩提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乃至 無有少法可得 是名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 무유소법가득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되, 세존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함은 얻은 바가 없는 것 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되, 그렇고 그러하다.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 작은 법이 라도 얻은 바가 없노라. 없기에 그 이름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느니라.
선혜동자 시절 연등 부처님 전에서 모든 것을 버렸기에 모두 버려진 것, 그것을 최상의 깨달음이라한다.
바라는 것이나, 구하는 것도 없고, 일체 상을 짓지 않아야한다.
23. 淨心行善分 정심행선분
復次 須菩提 是法平等無有高下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차 수보리 시법평등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以無我 無人 無衆生 無壽者 修一切善法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 所言善法者如來說 卽非善法 是名善法
수보리 소언선법자여래설 즉비선법 시명선법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어, 일체 차별이 없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느니라.
나라고 할 것도, 사람이라 할 것도 없고, 중생이라 할 것도, 존재라 할 것도 없는 상태에서 착한 법을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소위 착한 법이란 것도 따로 착한 법이라 할 것이 없어 그 이름을 착한 법이라 한다.
그 마음에 어떤 상도 짓지 않는 것을 청정한 마음이라 하고, 그래서 기대도, 바람도 없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마음을 내라. 그것을 이름하여 착한 법(선법)이니라.
예전에 어떤 부자 집에서 자기 다니던 절에 가서 부모님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쌀 백석을 내고 제사를 잘 지내 달라 여러 차례 부탁하였다. 당시에 이 돈은 매우 큰 돈으로 특별히 큰 스님께 가서 잘 지내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한 것이었다.
(제는 원래 49재 49일째에 지내는 것.)
그런데 그때부터 큰 스님께서는 다니면서 그 돈을 이리 저리 막 쓰시는 것이었다. 거지가 오면 거지에게 주고, 어려운 사람이 이야기하면 턱 하니 줘 버리고..이걸 본 주지 스님은 속이 탄다. 그런데도 큰 스님은 주지에게 이르길, “이번 재는 내가 하기로 했으니 신경쓰지 말게” 그러신다.
49재가 다가오자 큰 스님은 돈을 거진 다 쓰고, 당일이 되자 아주 조금의 돈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특히 가난하고 못사는 할머니들이 파는 곳에 가서 싼 나물과, 싼 채소를 조금 사다가 직접 볶고 요리하여, 아침 예불 후 죽비 세 번 치고 참선 후 끝내버렸다.
그래 보살이 와서 물어보니 큰스님 말씀이 “오, 내가 잘 지냈느니라.” 그런데 주지 스님께 여쭈어 보니 제를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안 그 보살은 난리가 나버렸습니다. 이때 절에 잘 오지 않는 그 남편이 큰 스님의 말씀을 듣더니 ‘스님 말씀이 옳다’하고 그 보살을 데리고 갔다는 거지요.
말하자면 ‘부모님을 위한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다 나누어 줬으니, 배고픈 일체 중생을 위하여 특별히 잘 지낸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살은 상을 짓기 때문에, 자기 소견머리로 형상을 보아 판단하므로 이와 같은 오류를 내는 것이다. 정말 신심있는 불자라면, 자기 스승인 큰 스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허튼 짓했다는 생각을 내고, 그러면 자기의 스승이 허튼 짓을 한 것이라면 그 오래 절에 다닌 것도 허튼 짓이 된다. 절에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생각에 빠지면 그 과보가 자기에게 오는 것이다.
24. 福智無比分 복지무비분, 복과 지혜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생명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구제하라. 그리고 내가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을 내지마라.
내가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 말고도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아인중생수자상에 사로 잡히는 것이 된다.
나아가서는 보살이 중생을 구제한다하는 중생이라는 상도 짓지 마라.
오안도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의 여러 작용에 불과하다.
나와 너가 연기된 하나임을 알고 중생을 교화한다.
須菩提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 須彌山王 如是等七寶聚 有人 持用布施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 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 지용보시
若人 以此般若波羅蜜經 乃至 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他人說
약인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 사구계등 수지독송 위타인설
於前福德 百分 不及一 百千萬億分 乃至 算數譬喩 所不能及.
어전복덕 백분 불급일 백천만억분 내지 산수비유 소불능급.
수보리야, 만약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바 모든 수미산 왕과 같은 일곱가지 보배로 남을 위해 보시를 행하더라도,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 경이나 그 속의 사구게라도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해 해설해주면 앞의 복이 그 백분의 일, 백천만억분의 일 아니 산수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삼천대천세계 천개가 다시 천개 다시 천개 대략 10억계의 세계가 되니, 십억개의 수미산이 있다.
예를 들면 정신대 있었던 사람들이 해탈하려면, 가해자들을 처형하거나 처벌하면 할수록 점차 내 몸은 정말 더러워진다. 원한은 조금 풀어 질른지 모르지만 ‘내가 더러워졌다.’라는 생각, 그 무거운 짐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법이 공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범소유상이 개시허망 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 몸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더렵혀 질수도 깨끗해 질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생의 업도 모든 원망도 함께 없어져 버린다.
자기의 경험의 세계에 갇혀서, 자기의 생각에 사로 잡혀서 볼 수가 없으므로 이렇게 인생이 답답한 것이다.
25. 化無所化分 (화무소화분, 함이 없이 교화한다.)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謂 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 물위 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 막작시념
何以故 實無有衆生如來度者. 若有衆生如來度者 如來 卽有我人衆生壽者.
하이고 실무유중생여래도자. 약유중생여래도자 여래 즉유아인중생수자.
須菩提 如來說有我者 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수보리 여래설유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須菩提 凡夫者如來說 卽非凡夫 是名凡夫
수보리 범부자여래설 즉비범부 시명범부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 등은 여래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고 수보리야 이런 생각을 하지 마라.
어찌한 까닭인가, 사실은 중생이라 할 것이 없어서 여래가 제도한다고 하느니라.
만약에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를 한다고 하면, 여래가 곧 아가 있고 인이 있고 중생이 있고 수자가 있느니라. (아인중생수자에 집착하는 것이 된다)
수보리야, 여래가 아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곧 아(나)가 있다고 할 것이 없지마는 이 어리석은 범부들이 아가 있다고 하니 할 뿐 이니라.
수보리야 범부라는 것도 범부라 할 것이 없어서 그 이름이 범부이니라.
몸을 더렵혔다 하더라도 더럽혀 졌다는 한 생각에 사로 잡혀 그렇게 할 뿐 본래부터 더러운 몸이 아니다. 부정하다는 생각도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중생일 뿐 본래 중생이 아니다. 여래가 곧 아가 있고 인이 있고 중생이 있고 수자가 있느니라. 이것은 여래가 아인중생수자에 집착하는 것이 된다.
원효가 방울스님을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푼 것도 망상에 사로잡혀 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불쌍하다는 생각을 뛰어 넘어 보시해야 한다.
일체 상을 짓지 말아야 한다. 이상을 깨고 저상을 취하고 그러기 일쑤이다.
여기서 수보리가 아라는 상을 취하자 깨고 아라 할 것이 없다. 하시니 다시 범부들이 ..하는 상을 취하므로 다시 범부의 상을 깨신다.
수보리가 한없이 상을 짓기 때문에 따라가시면서 상을 깨고 계신 것이다.
26. 法身 非相分 법신 비상분, 여래는 상이 아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 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 觀如來.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 관여래 부. 수보리언. 여시여시. 이삼십이상 관여래.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 하느냐? 몸의 32 가지 특징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느냐?
수보리 말하되, 그러하고 그러합니다.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미리 상을 짓고 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상에 집착한다고 한다.
이런 눈으로는 부처도 보살도 볼 수가 없다.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치 못한 것도 상 때문이다. “돌아가리로다 돌아가리로다, 상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보겠는가?”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卽是如來.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 전륜성왕 즉시여래.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設義 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
爾時 世尊 而說偈言
이시 세존 이설게언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 만약에 32가지 특징으로 여래를 볼수 있다면 전륜성왕도 곧 부처겠구나.
수보리 여쭈대,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설하신 바 그 뜻을 이해하기로는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게송으로 설하여 말씀하시되,
“만약에 이러한 모양, 색(눈)으로 나를 보려하거나, 어떤 소리로 나를 구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자이니 절대로 부처를 볼 수 없느니라.”
수보리 존자께서 무심코 32상으로 부처를 볼 수 있다고 하시다가 그럼 32상을 가진 전륜성
왕도 부처겠구나? 하시는 말씀에 아차 하시어 다시 32상으로 부처라 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도 결국 앞서의 범소유상이 개시허망하니 와 같은 뜻의 사구게이다.
절대로 부처를 볼 수 없느니라.: 상에 집착하는 한에는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다. 는 뜻.
부처님은 언제나 대중의 의사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법을 따라 행하시는 것이다. 살인자였던 앙굴리말라를 비구로 받아 들이실 때는 단호하게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행하셨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상을 버려야하는데 불법마저도 우리는 상으로 본다.
부처님의 목적은 오로지 중생을 깨닫게 하는 것 외에 없다.
27. 無斷無滅分 무단 무멸분, 끊어짐도 멸함도 없다
須菩提 汝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莫作是念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막작시념
如來 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 汝若作是念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說諸法斷滅 莫作是念
수보리 여약작시념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설제법단멸 막작시념
何以故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法不說斷滅相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불설단멸상
수보리야, 너가 만약에 이런 생각을 하되, 여래를 그 상호가 잘 갖춰지지 않은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수보리야 이런 생각을 짓지 말라. 여래를 상호가 잘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수보리야, 너가 만약에 이런 생각을 하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모든 법이 끊어지고 멸했다고 말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지 마라.
어찌한 까닭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저 법에 없다는 상도 내지 마라.
그러니까 상호가 잘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여래를 본다 이런 생각을 짓지 마라. 하는 것은
32상 80종호가 잘 갖춰진 것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 고 하니
이런 특징이 없는 것이 부처냐? 하는 질문입니다. 사고방식이 ‘있지 않다.’ 하면 ‘없다’하고 생각한다. 이게 단멸이다. 불교는 단멸론이 아니다.
부처가 되려는 사람이 ‘술 먹으면 안돼,’ 그래서 ‘술 먹지 마라’ 하면 술 안먹는 것으로 부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괴롭다, 괴롭다 하면서 스님들처럼 모두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버려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야지 하는데 이때 산속에 가면 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도를 얻지 못하는 원인이 남편과 아이, 재산 이 모든 것이 원인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세속에 사는 이유는 이것들이 행복의 원인이다 해서 사는데, 뜻대로 안되면 이것을 버려야 행복을 찾는 길이다. 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 재물과 사람의 관계는 고의 원인도 행복의 원인도 아니다.
법을 없는 것으로 능사를 삼아서도 안된다(단멸론).
지금까지 있다는 상을 짓지 마라 해왔는데 그럼 없는거구나 하고 없다는 상을 짓는다.
실제의 존재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눈앞에 보이지만 실체가 없고, 실체는 없으나 갖가지 모양으로 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형상에 집착할 때는 꿈 인줄 알아야하고, 또 공에 떨어지면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그대로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진여의 현(영)이다.
무기공, 공에 떨어지는 것은 안된다. 즉 허무에 떨어져서는 안된다.
28. 不受不貪分 불수불탐분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지용보시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所得功德.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소득공덕.
何以故 須菩提 以諸菩薩 不受福德故
하이고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덕고
須菩提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須菩提 菩薩 所作福德 不應貪着 是故說 不受福德.
수보리백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수보리 보살 소작복덕 불응탐착 시고설 불수복덕.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 만큼의 세계에 칠보로 가득히 채워서 보시를 행하더라도,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일체 법에 아라고 할 것이 없음을 깨달아 인욕을 성취하면 이 보살은 저 앞에 보살이 얻은바 공덕보다 뛰어나니라.
어찌한 까닭인가, 모든 보살은 복을 받지 않는 연고이니라.
수보리가 여쭙되,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을 받지 않습니까?
수보리야 보살은 복을 짓지만 그 복에 탐착하지 않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복을 받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아가 없다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라는 뜻이다.
아(나)가 없으면, 즉 무아이면 바랄 것, 참을 것, 얻을 것이 없다.
보살은 복을 짓고, 받지 않는다. 탐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슨 소득이 있느냐? 보살은 소득을 논하지 않는다. 그냥 보는 것이 그대로 행복인 것이다. 중생에게 나누어 주어 중생이 먹는 것을 보는 것이 행복이다.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아무른 바람이 없고 그 고통 속에서 무탈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바로 이 엄마의 마음이 보살의 마음이다. 이 상태에서는 한 몸이라 생각하므로 아무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조금 자라면 너와 나로 나뉘어져 바라고, 은근히 기대하게 되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하고 한편에서는 ’누가 놔 달라고 했어 잉? 가지고 논 값 내놔 잉.’
그래서 늘 참회해야 합니다.
보살은 복을 짓되 복을 탐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중생들에게 회향한다.
29. 威儀寂靜分 위의 적정분, 위의[행동거지]가 고요하다.
須菩提 若有人言 如來 若來 若去 若坐 若臥 是人 不解我所說義.
수보리 약유인언 여래 약래 약거 약좌 약와 시인 불해아소설의.
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 名如來.
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 명여래.
수보리야 만약에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오고, 가고, 앉고, 눕는다고 하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바 그 뜻을 알지 못한 까닭이니
어찌한 까닭이냐, 여래라는 것은 좇아오는 바도 없으며 가는 바도 없을 새, 이런 까닭으로 여래라 이름 하느니라.
* 오고 가고 앉는다 눕는다라는 뜻은
우리는 분별을 한다. 더럽다 깨끗하다. 그러고 깨끗한 것은 선호하고 더러운 것을 버리려 한다. 무언가 부지런히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깨끗하다 더럽다 분별을 짓지 않으니 싫어하고 좋아함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깨끗한 것을 가져 올 이유도 더러운 것을 버릴 것도 없거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들 이유도 없다. 이것을 ‘온 바도 간 바도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분별이 없으니, 더럽게만 입는 즉 빨지를 말아야한다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빨지 않고 계속 그대로 입고 있는다면 이것은 더러운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래가 빨래를 한다면 더러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빨래를 하는 것이다. 그냥 입을 수도 있지만, 그게 더 낫다면 좋은 생각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여래는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 일체 행에 분별하고 집착함이 없이 행을 하신다.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우리 식으로 해석하여 이러니 저러니 분별하면 그건 틀린 것이다.
예컨대 ‘선이 있으면, 그걸 넘어서면 갔다. 다시 넘어오면 왔다’ 할 수 있지만 분별의 경계선을 거두면 간다하더라도 가는바가 없고, 온다 하더라도 왔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뜻이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즉 일체의 분별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한 법이 없는 상태에서 갖가지 법이 나온다.
30. 一合理相分 일합이상분 (하나로 합한 이치의 모양[상])
須菩提 若善男子 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寧爲多 不.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이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어의운하. 시미진중 영위다 부.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卽不說 是微塵衆.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약시미진중 실유자 불즉불설 시미진중.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소이자하 불설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수보리야, 만약에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섬세하게 부수어 매우 가는 티끌을 만들었을 때, 이 티끌이 많으냐 많지 않으냐?
수보리 말하되,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까닭인가 하면, 만약 이 가는 티끌 들이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이 티끌 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까닭인가? 부처님께서 가는 티끌이라고 하시는 것은 가는 티끌 이라고 말 할 것이 없어서 그 이름이 가는 티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진이란 말하자면 우리의 경험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것을 말한다. 즉 현대적 개념으로 원자나 소립자 정도로 혹은 만물의 근원을 말함. 이것이 쌓이면 태산이 되고, 더 쌓이면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가장 큰 것이 되었을 때 이를 세계(우주)라 한다.
가장 큰 것을 가장 작게 부수면 매우 많다. 더 이상 잘게 부술 수가 없다면 그것을 미진이라 부르는바 그것의 실체가 있다면 티끌이라 이름 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부술 수가 없던지. 그자체로 고요하다면 티끌이라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단독적 실체가 없어서 티끌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세존 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 즉비세계 시명세계.
세존이시여, 여래가 말씀하시는 바, 세계란 것도 세계라 할만한 실체가 없으므로 그 이름이 세계입니다.
가장 적은 것도 가장 큰 것도 실체라 할 것이 없으므로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하이고 약세계 실유자 즉시일합상. 여래설 일합상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단범부지인 탐착기사.
어찌한 까닭인가, 만약에 세계라는 것의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즉시 일합상이어니와 여래가 일합상이라고 하는 것은 일합상이라고 할 것이 없어서 그 이름이 일합상(하나로 합한 모양)입니다.
수보리야 하나로 합한 모양이라는 것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거늘 다만 범부들이 탐착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라.
만약에 세계가 실제로 있고, 항상하고 영원하고 그렇다면 하나로 합한 모양이라고 해야 할텐데 그런 것이 없으므로, 라는 뜻이다.
‘수보리야 하나로 합한 모양이라는 것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거늘 다만 범부들이 집착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라.’
어려운 부분인데, 물질과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 과학 때문에 약간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진이라는 만물의 근원(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알갱이, 단독자라는 뜻) 그런데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고 큰 것이 큰 것이 아니다. 심지어 세계가 있다면 하나로 합한 모양 이라고 할텐데 그것도 일합상도 일합상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은, 미진이라는 것이 만물의 근원이고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진이 단독자라면 제법무아, 제행무상이 성립될 수 없다.
나는 오온의 쌓임이다. 오온은 더 이상 분리할 수없는 알갱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지금 이것도 다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온도 실체가 없는 것이다 하는 것이다(대승),
연관의 작은 알갱이는 단독자이다. 생각했는데, 연관의 가장 작은 알갱이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 미진도 무엇의 결합일 뿐 실체는 없는 것이다. 티끌이라 할 만한 실체가 없는 것이다.
물의 근원적인 것은 물 분자, 그러면 물분자가 단독자? 아니다 원자로 결합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텅 빈 원자, 속이 텅 빈 풍선 같은 원자들의 결합 위에 앉아 있다.
결국 이것들은 그런 시간과 그런 공간, 그런 조건에서만 인정 할 수 있을 뿐 그것을 떠나서 그것은 그것이라고 할 어떤 실체 즉 존재라 할만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그 역할을 인정한다.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동산이다 서산이라 할 것은 없지만, 동산 이라하면 서쪽에서는 그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다르게 부를 수 있다. 그래서 동산이다 서산이다라고 원래 할게 없어서 공하다하는데, 그걸 공하다 하면 완전히 없는 단멸상을 생각하니(에 빠지니),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하다고 한다고 해서 ‘완전히 아무 것도 없다’라는 생각에 떨어져도 안 된다.
우리의 의식은 바깥세계의 영향을 받아서 이루어진 것이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조건이 그러한 인연이 그러한 것을 만든다. 환경, 조건, 존재가 우리의 의식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바깥세계가 달라진다. 자기(자기의식)를 중심에 놓고 세계를 보면 잘못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다하는 것을 깨달아 버리면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될 수가 있다. 깨닫지 못하면 종속되게 된다.
다른 종교나 다른 철학은, 환경을 떠난 의식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자기로부터 출발하여 자기를 변화시킴으로서 세계가 바뀐다.
티끌이 고유성이 있다면 그게 아무리 모여도 티끌이지 하나의 세계가 될 수가 없다. 이게 모순이다. 그러나 그 시각 그 인연에서는 그렇게 이름 할 수 있는 역할을 할뿐, 미진의 고유성 단독성이 없으므로 서로 연관하여 세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세계가 세계라면 아무리 부숴도 세계일뿐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모여서 세계가 된다면 하나의 실체가 원래 없었다는 것이다.
‘작다느니, 크다느니’ 하는 것도 사실은 실체가 없다. 이 부분은 어려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건 내 마음이 만든 게 아니고 객관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제법에 실체가 없다. (일미진중 함시방)
손가락 다섯 개가 다른 것이라면 다섯 개가 모여서 한손이 될 수가 없다. 우리가 손가락 5개가 다르다는 것은 이름하여 그럴 뿐이지 실체가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또 한 손이라 하지만 여러 개의 결합으로 되어있다. 다섯 손가락을 보지 못하면 주먹 같은 한 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만물의 존재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즉 불일불이. 이것이 세계의 모습이다. 세계가 하나다 하면 한 덩어리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는 만상이다 하면 각각 독립되어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서로 연기되어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온이 공하다하는 것이다.
콩의 비유. 콩끼리 같이 있을 때는 콩이 다 다르네, 하고 콩과 팥이 있으면 이 콩 저 콩은 같은 콩이네 한다. 다른 콩이네 하고는 금새, 같은 콩이네 하는 것이다.
같다니 다르다니 하는 것은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분별을 지으면서 같다, 다르다고 한다. 존재는 오직 연관되어 있을 뿐이다. 한 덩어리도 아니고 별개도 아니다.
세계가 하나라면 일합상이라 할 수 있으나, 일합상 즉 한 덩이라 할 실체가 없다.
시간과 공간도 절대성이 없다. 이것이 상대성 이론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갇혀있다고 한다. 관념에 의해... 시간 따로 공간 따로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도 서로 분리되어있지 않다. 여기서 벗어나면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세계에 갈 수 있다. 시간이 멈추어진 세계에 갈수가 있다. 시간의 울타리에서 갇혀있으면서 변하지 않으려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변화하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것이 생겨 난 것이다.
31. 知見不生分 지견불생분 (어떤 아는 견해도 내어서는 안 된다)
한생각도 내지 마라. 한생각도 일으키지 마라.
須菩提 若人言 佛說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須菩提 於意云何. 是人解我所說義 不.
수보리 약인언 불설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해아소설의 부.
不也 世尊. 是人 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說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불야 세존. 시인 불해여래소설의. 하이고 세존설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卽非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是名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즉비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시명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께서 나라는 견해, 사람이라는 견해, 중생이라는 견해, 존재라는 견해를 말한다 하면,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내가 설 한바 뜻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이해하지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가 설하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함이니, 어찌한 까닭이냐, 세존께서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말씀 하신 것은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라 할 것이 아닐새 그 이름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입니다.
여래가 불성이다 라고 하면 그 실체가 있어서 불성이라 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불성이라서 불성이라 한다. 우리 몸에 불성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어서 이것을 찾아 헤메어서는 안된다.
어떤 견해, 어떤 상도 내어서는 안된다.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일체법 응여시지 여시견 여시신해. 불생법상.
須菩提 所言法相者如來說 卽非法相 是名法相.
수보리 소언법상자여래설 즉비법상 시명법상.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저 모든 것들에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같이 믿고 이해하여 법이라고 하는 상도 내어서는 안된다.
수보리야 법이라고 하는 상을 말함도 법상이라고 하는 것도 없음이니 이름하여 법상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최상의 깨달음을 깨닫겠다고 마음을 낸 자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같이 마음을 내야한다.
어떤 견해도 내어서는 안된다. 허망한다는 견해도 안된다. 어떤 상도 지어서는 안된다.
범소유상이 개시 허망하다고 알아야한다. 그러나 허망해야 된다고 견해를 내면 안된다.
‘집착을 놓아야한다는 견해’도 가져서는 안된다. 단지 집착을 놓을 뿐이다.
남편을 미워하지 마라 하면 단지 미워하지 않으면 되는데, 미워하지 않아야한다 라는 견해를 일으키니 이것까지 짐이 되어 괴로워하게 된다.
이것이 진리다 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마라. 법상도 버려라.
여래가 말하되 법이라고 하는 상도 없는 것이다. 단지 이름하여 법이라 하느니라.
32. 應化非眞分 응화 비진분 (응신과 화신은 진실이 아니다.)
드러난 현상에 사로잡히거나 집착하게 되면 존재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 持用布施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若有善男子 善女人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乃至 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人演說 其福勝彼.
약유선남자 선여인 발보살심자 지어차경 내지 사구게등 수지독송 위인연설 기복승피
수보리야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한량없는 세계에 칠보로 가득 채워서 보시를 행하더라도, 만약에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서 발보리심(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 을 일으켜 이 경을 지니되 사구게 같은 것들을 받아 지녀 외우고 남을 위해 설하여 준다면 이 복은 저 복보다 뛰어나다.
10의 7승을 104번 제곱한 것이 무량이고 105번 한 것이 아승지이다. 한량없다는 것을 말한다. 깨달음의 마음을 낸 자가 이 경을 지니고 사구게를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해 설하여 준다면, 앞서의 유루 행보다 그 복이 뛰어나다.
云何爲人演說.
운하위인연설
不取於相 如如 不動
불취어상 여여 부동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하이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어떻게 법을 설하는가?
어떤 상도 취하지 아니하며, 여여하여 부동하라.
일체 함이 있는 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아지랑이) 같고,
이슬, 번갯불 같으니, 응당 이렇게 봐야 한다.
여여 란 본래로부터 고요한 것. 여여부동은 깨달은 이후 아니라도, 꿈속에서도 괴로워 할일이 없다.
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아지랑이) 같고 .. 있는 것 같지만 없고, 제법무아를 말함이고, 이슬, 번갯불 같다 금방 사라지니 제행무상을 말한다.
제법무아 제행무상이면 열반적정이니 곧 삼법인의 가르침이다.
꿈속에서 누가 죽었다고 슬퍼하지만 깨고 보니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 우월의식을 가지고 남을 대하고, 옳고 그름을 논한다면, 그 또한 법상을 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법은 남에게 적용하지 말라. 오로지 자기에게만 적용하라. 남에게 적용하는 것은 이미 상을 지은 것이다.
佛說是經已 長老 須菩提 及諸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尼 一切世間 天 人 阿修羅
불설시경이 장로 수보리 급제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부처님께서 이경 설 하심을 마치시니
질문한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 비구니, 일체 남녀 신도, 천상의 신, 인, 아수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 들이 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듣고 모두 크게 환호하며 기뻐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더라.
매우 상세하게 진실을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나 진실하다는 상도 짓지 말아야 한다.
마하 반야바라밀.
구구절절 일부러 망상을 질문하신 수보리 장로에 대하여도, 그것을 마다하지 않으신 부처님의 은혜, 수많은 선지식의 은혜, 이경을 짊어지고 와서 유포한 구마라습 대사 등 그리고 감옥 안에서 번역을 하신 용성 큰스님 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역대전등 제대조사 들은 물론이고 이 경을 통해 이경의 공덕이 널리 유포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 일 것이다.
[출처] 법륜스님금강경下(15,지경공덕분~32,응화비진분)|작성자 고경거사
'詩 · 名句 · 속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보왕삼매론 (0) | 2015.04.02 |
|---|---|
| 을미년 연하장 (0) | 2014.12.26 |
| 금강경-1 / 법륜스님 (1) | 2014.12.05 |
| 두번은 없다 / 쉼보르스카 (0) | 2014.10.03 |
| 모과/김중식 (0) | 2014.09.06 |